남과 북의 정상이 아래위를 오가며
평화와 상생의 손을 맞잡게 된 지금
1998년 가을에 시작되어 2003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
북녘 땅 여기저기를 돌며 낯을 익힌 사람들
바로 북녘 땅 우리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.
세월과 먼지에 묻힌 필름들을 모두 꺼내어 살피는 지금,
‘사람인’ 그들과 나눈 모든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
다시 이 걸음을 잇고 싶다는 생각이 온전히 가슴을 뛰게 만든다.
알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있는 듯 성큼 달달해진다.
“림선생! 사는 거이 뭐 다 똑같디요. 무엇이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? 하하하.”
그 사이 몇 번이나 들었던 북측 안내원의 농 섞인 질문이다.
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성에 두 눈을 고정한 채 좋아라 히죽거리는 나의 모습이
그들의 눈에는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기도 했다.
그러나 빈곤과 억압 위주의 체제적 단면들만 주입받아 온
나에게는 일상의 이질감을 벗어나는 삶의 풍경들이었고,
스스로 인식의 전환을 이룰 만한 통렬한 쾌감의 정경들이었다.
여기는 북녘 땅 평양임을 자각하는 비현실적인 실체감 속에서
오롯이 눈과 귀를 모으게 되는 특별한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여기저기에서,
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.
“림선생! 찍고 싶은 대로 다 하시라요. 우리가 한번 믿어 보갔습네다!”
무엇을 보게 될지, 어느 순간에 셔터를 누르게 될지 사실 아무 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.
우리 일행의 방북일정만 기록하고 기념이 될 자리 앞에 선 채 피사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.
오히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달아오른 막연한 기대심이 더 컸고,
웃음으로 내민 북측 안내원들의 손을 맞잡으면서 확신했다.
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볼 것이라는 것을
- 임종진의 작가노트 -